[나쁜 손] 요가 학원 원장의 말 못할 고민 4(끝)  

* 이 이야기는 성심리상당소를 운영하는 여성 치료사의 관점에서 서술한 [소설]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내담자의 이야기는 허구일수도 사실일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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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이프 헤이븐>
 
[부부치료와 가족치료 기법]
'지지이해기법'은 상대방의 바람직한 행동, 커플의 협동성, 커플 간의 긍정적 감정을 증가시키려는 목적이 있는 기법이다.문제해결 기술은 커플에게 긍정적 의사소통 기술을 훈련해서 효과적인 의사결정과 타협이 가능하도록 가르친다.
 
- Robert L. Leahy,중에서
 
‘반영적 경청’이란 나 자신의 메시지를 포함하지 않고 상대방의 내면을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만을 수행하여 상대방이 말한 메시지를 반영(되돌려)해 주거나 다시 상대방의 말을 확인하는 종류의 언어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아래의 예처럼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의 의미를 새로운 표현으로 되돌려 보냄으로써 정말로 상대방의 말을 이해(공감)하고 있고 또 경청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다. 예) 자녀: 엄마, 친구가 때렸어요. 엄마: 친구가 때려서 많이 속상하겠구나.이와 같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단순히 상대방이 호소해온 메시지의 의미만을 다시 되풀이해주는 것이다.
 
- Thomas Gordon, 중에서

 
 
찌푸 씨가 돌아간 후 수호 씨가 예약일에 맞춰 다시 상담소를 찾아왔다.
 
“수호 씨... 찌푸 씨가 알고 있어요. 이미 동네 분들한테 들었나봐요. 수호 씨 앞에서 내색 안 하려고 노력한 듯하던데 수호 씨는 알고 있었나요?”
 
수호 씨는 고개를 푹 떨구고 침묵하다가 이내 힘겹게 입을 떼었다.
 
“그랬군요. 찌푸가 다 알고 있었군요. 혹시 선생님께 베트남으로 돌아가겠다고 안 하던가요? 저랑 못 살겠다고 안 하던가요?”
 
나는 불안감에 젖어든 수호 씨의 눈빛을 보며 그를 최대한 안심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했다.
 
“아니에요. 찌푸 씨는 가정을 지키고 싶어해요. 한국생활도 좋다고 하고 적응도 잘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건 확실한데 그것을 내색을 안 하려 하니 더욱 힘들었나봐요. 지금 두 분 관계회복에 가장 필요한 건, 수호 씨의 진심 어린 사과입니다. 말 꺼내시기가 어려우시면 다음 주에 두 분이 함께 내원하세요. 제가 사과할 기회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단 정말 진심을 담아 참회하셔야 하고,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주셔야 합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내색 못하고 속앓이 했던 찌푸 씨의 마음을 헤아려주세요. 아셨죠?“
 
“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수호 씨에게 찌푸 씨에게 사과하는 방법을 순서대로 어드바이스 코칭해 주고 나서 수호 씨를 배웅했다. 마침내 두 사람의 예약일이 다가왔다. 눈부신 아침이었다. 화해할 부부의 따뜻한 모습을 연상하며 드는 기분 좋은 느낌에 내 가슴은 설렜다.
 
“선생님, 저희 왔습니다.”
 
아기 지연이를 업은 찌푸 씨와 수호 씨가 함께 들어왔다. 지연이가 안 자고 있어서 조금 얼러주고 놀아준 나는 인턴상담사에게 지연이를 맡기고 커플 상담을 시작했다.
 
걱정이 앞섰지만 두 부부의 얼굴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2주 전과 다르게 찌푸 씨도 평온한 얼굴이었고 수호 씨도 긴장한 듯 보였으나 대체로 편안해보였다. 상담사가 캐치해야 할 부분은 내담자의 언어뿐만 아니라 언어 속에 내포된 의미와 말투와 표정 같은 비언어적인 요소이다. 마음을 열기 전 내담자는 내면에 방어막을 치고 ‘알아서 맞춰봐’라는 태도로 상담에 임하기도 한다. 마치 상담사가 역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상담사는 특유의 ‘촉’과 ‘세심한 감성’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 있어야 하고 또한 섬세하게 내담자의 표정 하나하나를 읽어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표정과 행동, 언어 이 모든 걸 조합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상담이 되고 치료된다.
 
“자, 찌푸 씨. 사실 수호 씨가 찌푸 씨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나봐요. 찌푸 씨는 지금부터 수호 씨가 하는 말에 무조건 지지하고 이해해주세요.” (이것을 '지지이해기법'이라고 한다.)
 
수호 씨에겐 찌푸가 하는 말에 한 번씩 요약해서 반응하는 '반영적 경청 기법'으로 이야기하라고 지난 회기에 당부해 두었기에 눈을 찡끗하며 잘할 수 있겠냐는 퀘스천식 신호를 주었더니 수호 씨가 알겠다는 눈빛을 보내온다. 먼저 수호 씨부터 시작했다.
 
“찌푸, 나 정말 미안해. 사실은 나 요가학원에서 회원들 몸을 만졌던 게 사실이야. 찌푸에게 정말 미안하고 무척 후회하고 있어.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야. 한 번만 믿어줄 수 있을까? 나에게 한 번만 기회를 줄 수 있을까? 난 찌푸와 지연이, 우리 가족 정말 사랑해. 찌푸 없이는 이제 못 살아. 찌푸한테 상처를 줘서 미안해. 그래서 앞으로는 안 그럴 거야. 난 찌푸만 영원히 사랑해. 내 진심을 믿어줘.”
 
“흑흑흑...”
 
찌푸 씨가 잠시 고개를 떨구더니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수호 씨도 울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나도 눈물이 나왔다. 수호 씨는 정말로 본인의 행동을 깊이 반성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수호 씨가 흘리고 있는 저 눈물이 연출된 눈물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오열하던 찌푸 씨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흑흑... 여보, 나도 여보 사랑해요. 근데 아줌마들한테 흑흑. 얘기 듣고 많이 슬펐어요. 여보가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응, 우리 찌푸 아줌마들한테 얘기 듣고 많이 힘들었구나. 힘들고 슬펐구나...”
 
내가 일러둔 기법으로 수호 씨가 아주 이야기를 잘 풀어가고 있었다.
 
“응, 정말 슬펐어요. 많이 울었어요. 여보...”
 
“우리 찌푸가 슬퍼서 많이 울었구나.”
 
“네... 여보, 안아주세요.”
 
둘은 내 앞에서 회한과 눈물범벅이 된 포옹을 하였다. 비록 찌푸 씨의 한국어 표현이 조금 부족해서 말이 길게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찌푸 씨는 수호 씨를 지지하고 이해하는 데 막힘이 없었고. 수호 씨도 마찬가지로 찌푸 씨의 말에 반영적 경청을 잘 해주어서 두 사람은 이렇게 상처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진작 내면을 꺼내서 대화하면 될 것을. 수호 씨는 찌푸 씨가 떠날까 두려운 마음에 말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고 반대로 찌푸 씨는 본인이 안다는 것을 알면 수호 씨가 상심할까봐 서로 말도 못하고 가슴앓이하며 그 고생을 해왔던 것이다.
 
진심은 진심이 알아본다. 뭐든 진심 어린 대화로 풀어서 안 될 것이 없다. 아이를 업고 한껏 밝아진 얼굴로 다정하게 상담소를 나가는 수호씨 가족을 배웅하면서 상담사로서의 뿌듯한 자긍심이 차오르는 걸 걸 느꼈다. 그래 한 가정을 위기에서 구했구나.
 
“김 선생, 이 선생, 한 선생! 우리 오늘 회식할까? 뭐 먹고 싶어요?”
 
인턴 선생님 세 명이 나의 회식 제안에 환하게 웃으며 반응한다.
 
“삼겹살, 쏘주요!”
 
“아냐, 치맥.”
 
“싫어, 소장님! 파전에 막걸리 추천합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취향도 제각각이다. 내가 만든 ‘성심리 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현재 우리 상담소에서 인턴으로 성실하게 활약하고 있는 믿음직한 내 식구들 다른 가정을 위기에서 구했으니 오늘은 내 가정을 살뜰히 잘 살펴주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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